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더 테러리스트 리뷰 (소통 부재, 책임 회피, 작은 목소리)

by seokmoney 2026. 4. 4.

출처: 네이버 영화 공식 포스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진 영화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영화 테러리스트는 단순한 액션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저는 보는 내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제 주변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사과 한마디를 끝내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 흐름이 너무 낯설지 않았습니다.

소통 부재가 만드는 균열

일반적으로 테러는 거창한 이념이나 돈 때문에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에서 범인이 원했던 것은 그저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였습니다. 30년 전 마포대교 보수 공사 중 숨진 인부 3명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지극히 소박한 요구였습니다.

저는 이 설정이 가장 큰 울림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 경험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다 짜고 숙소와 교통편 예약까지 마쳤는데, 한 친구가 갑자기 일정이 생겼다며 못 간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저는 화가 났고, 결국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혼자 오해한 상황이었고, 제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존심 때문에 그 말을 한참 동안 못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갭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 갭이란 발신자가 전달하려는 의도와 수신자가 받아들이는 내용 사이에 발생하는 인식의 차이를 말합니다. 영화 속 박신우의 아들 박노규가 30년을 기다리며 쌓아온 분노도, 제가 친구와 겪은 감정의 충돌도, 따지고 보면 이 커뮤니케이션 갭이 해소되지 않아 터진 결과입니다. 말 한마디가 제때 오가지 않았을 때 관계에 생기는 균열은 생각보다 깊습니다.

영화에서 범인의 요구를 듣고도 국가 기관이 협상 대신 강경 진압을 택한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갈등 해소 방식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위기 상황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물리적 대응보다 해결 가능성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그런데 영화 속 권력자들은 그 반대의 선택을 했고, 결과는 모두가 아는 비극이었습니다.

책임 회피가 부르는 결말

이 영화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서는 이유는 바로 권력의 책임 회피를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국가의 자존심"이라는 명분 아래 대통령의 사과를 거부했고, 보도국장은 사람의 목숨보다 시청률을 먼저 챙겼습니다. 여기서 시청률이란 특정 시간대에 해당 방송을 시청한 가구 수의 비율을 뜻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것이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시 되는 기괴한 가치관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이 장면들이 유독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회사에서 계약 업체와의 업무 중 명백히 상대방의 잘못인 상황을 보고했을 때, 돌아온 답은 "원래 다 그런 거야, 예민하게 굴지 마"였습니다. 저의 잘못이 아닌 상황을 제가 감내해야 했고, 그 경험이 반복되면서 마음속에 조금씩 분노가 쌓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여도, 내부에서는 조용히 균열이 커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모습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권력자
  • 진실 보도 대신 시청률을 선택한 언론
  • 피해자 구조보다 범인 검거에 집중하는 국가 기관
  • 모든 것이 끝난 후 주인공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시스템

이 목록이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저만의 감상은 아닐 겁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언론 신뢰도는 꾸준히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재난·위기 상황에서의 보도 태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모럴 헤저드해저드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모럴 해저드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보도국장이 테러 상황을 단독 생중계로 이용하며 시청률을 올린 행위, 정부가 사과 대신 강경 진압을 선택한 행위 모두 이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선택들이었습니다.

작은 목소리를 무시한 대가

영화의 결말은 냉소적입니다. 범인 박노규는 경찰의 총에 맞아 추락사하고, 주인공 윤영화는 모든 것을 잃은 채 폭발 직전의 건물 안에 혼자 남겨집니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평가와 "지나치게 허무하다"는 평가가 팽팽히 맞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 결말이 불편하면서도 솔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찬 교훈을 주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해피엔딩보다, 이렇게 불편한 결말이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러티브 아이러니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아이러니란 이야기 안에서 인물이나 관객이 기대하는 방향과 정반대의 결과가 발생할 때 생기는 극적 긴장감을 말합니다. 윤영화가 이 사건을 커리어 회복의 기회로 활용하려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잃는 구조, 범인이 정의를 요구했지만 끝내 총에 맞는 구조, 이 모든 것이 내러티브 아이러니로 작동하며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제 경험상 이런 상황은 영화 밖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됩니다. 회사에서 초반에 여러 의견을 냈다가 번번이 묵살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말하기를 멈추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사소한 무시와 억압이 쌓이면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속에서는 극단적인 분노가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영화 속 박노규가 30년을 버티다 결국 폭발한 것처럼, 사람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를 제때 들어주지 않는 사회가 결국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이 영화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실시간 구성 방식, 즉 영화 속 시간과 실제 상영 시간이 거의 일치하게 흘러가는 편집 방식 덕분에 관객은 숨 돌릴 틈 없이 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단순히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 안에 함께 있는 듯한 압박감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킵니다.

영화 테러리스트는 희망찬 결말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미루지 말아야 할 사과, 들어야 할 목소리, 져야 할 책임, 이 세 가지가 제때 이루어졌다면 이 비극은 없었을 겁니다. 영화를 본 뒤 저는 제가 무심코 무시했던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불편하고, 가장 솔직한 숙제였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seokm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