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단순히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다룬 무거운 영화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초반부터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더군요. 민원왕 할머니와 9급 공무원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시작해 점차 역사적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구조가 영화의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제가 한국사 공부를 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배웠을 때는 교과서 속 역사적 사실로만 받아들였는데, 이 영화는 그 피해자들이 현재 우리 곁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계신지를 생생하게 보여줬습니다. 여기서 일본군 위안부란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일제가 조직적으로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 동원한 전쟁범죄를 의미합니다(출처: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코미디에서 휴먼드라마로, 장르 변주의 완성도
영화는 처음 30분 동안 전형적인 한국형 코미디 구조를 따릅니다. 나옥분 할머니가 동네 곳곳을 누비며 불법 주차부터 쓰레기 무단 투기까지 신고하는 모습은 과장되고 소란스럽기까지 합니다. 구청 직원들이 할머니만 보면 피하는 설정도 다소 클리셰처럼 느껴지죠. 제가 처음 본 20분 정도는 솔직히 '이게 과연 감동적인 영화가 될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박민재라는 원칙주의 공무원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제훈이 연기한 민재는 할머니의 파상공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업무 매뉴얼대로만 일을 처리하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이 영어라는 매개체로 연결되면서 영화는 세대 간 소통과 이해라는 휴먼드라마로 자연스럽게 이동합니다.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려는 표면적 이유는 미국에 사는 남동생과 통화하기 위해서였지만, 관객은 점차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감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장르 변주는 관객의 감정선을 조절하는 영리한 장치였습니다. 여기서 장르 변주란 하나의 영화 안에서 코미디, 드라마, 사회고발 등 여러 장르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연출 기법을 말합니다. 초반의 가벼운 웃음이 중반부터는 진지한 몰입으로, 후반에는 뭉클한 감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억지스럽지 않았던 건 나문희 배우의 연기력 덕분이기도 합니다.
위안부 서사를 다루는 새로운 시선
기존 위안부 관련 영화들, 예를 들어 '귀향'이나 '허스토리' 같은 작품들은 대부분 피해 사실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재현하고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물론 이러한 접근도 의미가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감정적으로 매우 소진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다큐멘터리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볼 때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 캔 스피크'는 다릅니다. 이 영화는 피해자를 과거에 묶어두지 않습니다. 나옥분 할머니는 현재를 살아가는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동네 민원왕으로 활동하고,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때로는 공무원과 티격태격하는 일상적인 모습들이 화면을 채웁니다. 피해자 정체성이 할머니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거죠. 여기서 피해자 정체성이란 개인이 과거의 피해 경험으로만 규정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는 그러한 일차원적 규정을 거부합니다.
영화 중반부에서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려는 진짜 이유가 드러납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직접 증언하기 위해서였죠. 친구 정심 할머니가 치매로 기억을 잃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비로소 할머니의 집요한 민원 제기와 원칙 고수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국가에서 정당한 사과 하나 받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온 분이, 작은 것 하나도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따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생존해 계신 분들은 2024년 기준 약 9명에 불과합니다(출처: 여성가족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이 이 영화에 깔려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알아야 한다는 건 단순히 과거사를 공부하자는 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 곁에 계신 생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뜻입니다.
미 의회 증언 장면, 그리고 용기의 가치
영화의 백미는 단연 워싱턴 D.C. 미 의회 청문회 장면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감명받은 건 할머니가 보여준 용기였습니다. 일본 측 의원들이 증언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고, 긴장감 속에서 말문이 막힌 할머니가 잠시 주춤합니다. 그때 민재가 깜짝 등장해 조용히 응원을 보내죠. 그리고 할머니는 "Yes, I can speak"라는 짧지만 강력한 한 문장으로 증언을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감동 포인트가 아닙니다. 실제 미 의회 청문회는 국제 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중요한 플랫폼이었습니다. 여기서 미 의회 청문회란 미국 의회가 특정 사안에 대해 증인을 소환하여 공개적으로 증언을 듣고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공식 절차를 말합니다. 2007년 실제로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 등이 미 의회에서 증언했고, 이는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로 이어졌습니다.
영화 속 할머니는 유창한 영어로 자신이 겪은 고통을 증언합니다. 옷을 올려 배에 남은 총검 흉터를 보여줄 때 청문회장은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일본 측 의원을 향해 던지는 질문,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어렵냐"는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공포와 수치심을 이겨내는 용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이 공식 사과를 하지 않는 건 국제적 망신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봅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보상이 끝났다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지만, 이 협정은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시킨 게 아닙니다. 여기서 한일청구권협정이란 한국과 일본이 국교 정상화를 위해 체결한 조약으로, 과거사 보상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위안부 피해는 협정 당시 논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옥분 할머니는 동네로 돌아와 여전히 민원왕으로 살아갑니다. 달라진 건 이제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를 따뜻하게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피해자이기 이전에 우리 이웃이었던 할머니가,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한 후에도 일상으로 돌아와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는 메시지는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느낀 건 역사 교육의 한계였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위안부 문제는 숫자와 사건의 나열이었지만, 영화 속 나옥분 할머니는 살아 숨 쉬는 인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건 피해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상처를 안고도 당당하게 살아온 생존자들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원하는 건 동정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인정과 정의로운 사과라는 것, 이 영화는 그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